"소통이 보여주는 길"
객원기자 ⓒ김상헌
지난 12월 4일 서울 JCC 아트센터에서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주관하에 ‘제1회 댄서스 잡페어’가 개최되었다. 이번 댄서스 잡페어의 목표는 무용예술인의 직업전환 및 무용직군 개발을 위해 다양한 재단과 기업, 단체가 방문자들에게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네트워킹의 장을 마련하는 데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댄서스 잡페어는 직업전환과 직무 개발이라는 대의의 측면에서도 유의미한 행사였지만 무용예술계 내의 네트워킹과 결속력을 강화시킨다는 점에 있어서도 그 의미가 컸던 것 같다. 직무 전환을 기점으로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었던 전 무용예술인들을 다시 결속 시키고 무용계에 다양성과 새로운 가능성을 불어 넣는 것은 무용계에게 새로운 활로를 하나 열어주는 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행사를 지켜보며, 이와 같은 행사가 오랫동안 지속되며 무용예술 생태계 자체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는데, 이는 전적으로 이번 행사에서 참여단체와 방문객들이 보여준 인간적인 유대관계 덕분이었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
객원기자 ⓒ김상헌
이번 잡페어에는 문화 예술, 기획, 엔터테인먼트, 교육, 재활, 사진, 영상, 패션, 메이크업, 크리에이터, 창업, 디자인, 베리어프리와 같이 다종다양한 업계에서 35개 단체가 참여했다. 언뜻 보기에 관련이 없는 여러 분야가 혼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직업전환에 성공한 전 무용예술인 또는 관련 업계 종사자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이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단체들 간에도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취업시장에 뛰어들지 않은 무용예술 전공생들과 현재 무용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는 현직자들, 그리고 그 모든 길을 먼저 걸어오고 자신의 길을 개척한 참가 단체의 관계자들이 경계 없이 어우러질 수 있는 자리였다.
행사에 참여한 기관과 방문객들의 모습은 기업과 예비 취업자의 만남 이라기 보다는 먼저 길을 걸어간 선배와 그 길을 뒤따라 가보고자 하는 후배들의 만남 같았다. 처음에는 참여한 기관의 관계자들이 자신이 자리 잡은 분야의 전문가로서 해당 분야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와 프로그램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데 집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상적인 정보 전달을 넘어선 소통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참여 단체의 관계자들이 먼저 자리를 잡은 선배로서 후배의 고민을 들어주고 자신이 밟아온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인간적인 대화가 오갔다.
방문객들도 처음에는 당장 당면하게 될 취업시장에 대한 걱정으로 교육이나 재활과 같은 특정 분야로 편중되는 경향을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기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자 하는 모습을 띄었다.
특히 기억에 남은 모습이 있다.
졸업을 앞둔 학생이 관련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상담을 희망하자 한 단체는 잠시 부스를 접고 그 학생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긴 시간 동안 진정성 있는 상담을 해주는 모습이었다. 참여한 단체들이 후배와 업계 동료들을 위한 마음으로 이 행사를 준비하고 참가했다는 사실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직업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관련된 정보를 교환하는 행사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이 행사가 단순 정보를 넘어서 전/현직 무용예술계 종사자들의 유대를 나누는 자리라는 깨달음이 그제야 왔다.
"아이를 키우는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객원기자 ⓒ김상헌
사전에 취재를 준비하면서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준비한 무료 프로필 촬영이나 자기소개서 첨삭과 같은실리적인 서비스로 사람들이 몰리게 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때문에 참가 단체와 방문객들이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것이 의외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무용예술계 사람들은 별로 놀랍게 여기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상호작용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운이 좋게도 취재 기자로 참여한 덕분에 세팅부터 철수까지 머무르며 행사의 여러 모습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 덕에 짧게 둘러보고 갔더라면 깨닫지 못했을 이 자리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업계의 외부자로서, 예술계의 폐쇄성에 대한 논의를 읽고 들은 바 있고, 그에 따라오는 부정적인 편견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 편견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닐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행사기간 잠시나마 무용 예술계의 안쪽의 풍경을 바라보며 알게 되었다. 폐쇄성의 이면에는 밖에서는 알 수 없던 따듯하고 끈끈한 결속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 유대가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과 예술가를 키우고 있었다는 것을.
행사가 끝나고, 참가단체들의 피곤한 얼굴 한 켠에 뿌듯함과 애정이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며 다시 한번 이와 같은 결속이 건강한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랬다.
김상헌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 객원기자
숭실대학교 건축학부 실내건축학 졸업
전) 아뜰리에 롱고 공간/브랜딩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