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렘과 걱정이 함께한 출발"
춤은 우리 각자의 개성을 반영하는 몸의 언어로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활동하는 나는 다양한 몸의 이야기를 춤으로 풀어내며 관객과 소통해왔다. 그러던 중,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용음성해설가라는 새로운 영역을 알게 되었고, 이는 극장 무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몸의 움직임과 시각적 이미지를 시각 외의 다른 감각으로 어떻게 감상할 수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궁금증은 나를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무용음성해설가 교육프로그램으로 이끌었다. 프로그램을 신청한 후, 느꼈던 설렘은 곧 장애인 관객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던 나의 무지와 부딪히며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예술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이자,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나의 신념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반성은 나를 무용음성해설가로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도전과 실수를 반복하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 무용음성해설가 교육프로그램은 입문과 심화과정으로 구성되어, 무용음성해설에 필요한 기본 지식과 기술을 넘어서는 깊은 통찰의 시간을 제공했다. 장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탐구하며 시작된 과정은 기초 문법에서부터 대본 작성, 음성 해설 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실습을 포함했다. 특히, 장애인에 대한 인식 전환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비장애인"이라는 용어가 실제로 '아직 장애가 아닌'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장애를 경험할 가능성이 모두에게 열려있음을 의미한다는 깨달음을 통해, 장애에 대한 나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심화과정은 이러한 기반 위에서 더 나아가, 선택한 무용 영상 분석을 시작으로 대본 작성과 스피치 연습을 통한 음성 해설 실습이 이루어졌다. 입문 과정이 춤의 생동감을 언어로 옮기는 연습이었다면, 심화 과정은 이 언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었다. 대본 작업은 무대 위의 다양한 정보를 어떻게 명확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객관적인 정보전달은 물론, 감각적이고 표현적인 요소를 어떻게 대본에 적절하게 배치할지에 대한 노력이 필요했다.
교육 과정에 더욱 집중하면서, 나는 무용음성해설가로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을 넘어,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시각장애인 관객이 춤의 에너지와 감정을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스피치 연습은 대본을 생동감 있는 이야기로 발전시키는것에 핵심이 되었고, 직접 쓴 대본을 낭독하고 녹음한 후 반복적으로 수정하고 타이밍을 조정하는 과정은 관객에게 무용을 가장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즐거운 과정이었다.
"처음 가보는 낯선 길"
작년 가을, 서울국제발레축제(K-Ballet World)의 <월드발레스타갈라>와 <PADAF 제13회 융복합공연예술축제>에서 무용음성해설가로 참여했다. 이 경험은 내게 매우 특별하고 의미 있었다. 특히 <PADAF 제13회 융복합공연예술축제> 공연의 현장 해설 참여는 나에게 많은 도전을 안겨주었다. 공연 리허설 중 발견된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준비했던 모든 것을 다시 검토하고 수정해야 했으며, 무용수의 안무 및 동선 변경, 소품 위치 조정, 그리고 예상치 못한 현장 상황들을 맞닥뜨리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무용음성해설가로서 전문적인 역량과 더불어 다양한 현장 경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용의 생동감을 담아낼 수 있는 대본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로 인해 무용음성해설이 유연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시각장애인 관객으로부터 받은 피드백은 공연의 ‘소리’ 정보가 해설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상기시켜주었는데, 해설 중 시각장애인 관객들에게 공연현장을 실감 있게 경험하기 위한 더 많은 '소리'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다시, 출발점에 서서"
무용음성해설가로서 참여한 이번 교육 과정은 나에게 깊은 가치와 의미를 선사했다. 장애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부족하고, 장애인 관객을 예술의 세계로 초대하는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매개체가 우리 사회의 분리와 경계를 넘어 서로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이 경험을 통해 모든 관객이 무용 작품을 동등하게 즐길 수 있는 길을 안내하는 무용음성해설가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번 첫 시도로 얻은 용기와 책임감을 바탕으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려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경계를 넘어, 예술을 통해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경험을 창조하기 위하여, 나부터 변화를 실천에 옮기려 한다.
정이와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안무가, 예술교육가
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춤으로 이끌어내는
예술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