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실

보도자료 [한겨레] 무용수 손잡은 어르신, 마음이 먼저 춤을 추네
관리자 I 2018-08-08 I 330

무용수 손잡은 어르신, 마음이 먼저 춤을 추네

등록 :2018-08-06 05:00수정 :2018-08-06 09:41

파킨슨 환자 무용치료 ‘댄스 포 피디’

노인 환자들 박자 타며 신난 몸짓
”아내 웃음치료까지 다녔는데
신기하게 댄스가 제일 효과 좋아”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국내 첫선
올해 병원 재활센터에 강사 파견
”무용수 재능기부·직업 전환 기회”
파킨슨 환자 무용치료 프로그램인 ‘댄스 포 피디’에 참여한 환자들과 무용수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 제공
파킨슨 환자 무용치료 프로그램인 ‘댄스 포 피디’에 참여한 환자들과 무용수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 제공
“여러분! 우리 카드놀이 한 번 해볼까요? 누가 먼저 할지 순서는 묵찌빠로 정해요. 자, 손에 힘을 줘서 스타카토처럼 묵!찌!빠! 이젠 옆 사람에게 카드를 나눠줄까요? 패를 돌리는 동작 해보세요~ 음악에 맞춰서~신나게~“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스튜디오 마루’. 하얀색과 노란색으로 화사하게 꾸며진 무용연습실에서 몸놀림이 불편한 10여명이 강사의 시범에 맞춰 동작을 따라 하고 있었다. ‘댄싱 퀸’ 등 아바의 신나는 음악을 시작으로 ‘헤이, 주드’ 등 비틀스의 음악까지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를 관통하는 팝 명곡들이 귀를 간지럽혔다. 마음 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과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이들 옆에는 노란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강사들이 한 명씩 붙어 앉아 연습을 도왔다. “어르신, 몸을 앞으로 했다가 뒤로 했다가~지금 잘하고 계세요.” 강사들의 추임새에 노인 환자들은 연신 몸을 움직였다. 박자를 타며 신이 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프로그램은 손을 맞잡고 고마운 마음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다 같이 원형으로 모여 이마를 맞대고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만나요”라고 소리를 내어 말했다. 파킨슨병 환자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스킨십 시간이다.

매주 월요일 오후 2시,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운영하는 ‘댄스 포 피디’(Dance For PD-Parkinson’s Disease) 프로그램 현장 모습이다. 댄스 포 피디는 미국의 마크 모리스 댄스그룹이 브루클린 파킨슨 그룹과 손잡고 지난 2001년 시작한 파킨슨병 환자를 위한 무용 치료 프로그램으로, 현재는 25개국에서 300개가 넘게 운영 중이다. 국내에는 2017년 첫 선을 보인 후 같은 해 9월부터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무료 시범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무용수에게는 사회적 재능기부와 함께 은퇴 뒤 직업 전환의 기회를, 환자에게는 효과와 재미를 더한 재활치료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석이조’를 도모한다.

지난 7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연습실 마루에서 파킨슨병 환자드이 댄스치료를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7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연습실 마루에서 파킨슨병 환자드이 댄스치료를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음악과 춤으로 파킨슨 환자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다 “자꾸 넘어지고 몸을 마음대로 못하는 증상보다 아내가 웃음을 잃어가는 게 난 더 마음이 아프더라고. 재활의학과를 전전하고 웃음치료까지 받으러 다녔는데, 신기하게 이 ‘댄스 포 피디’가 제일 효과가 좋더라니까.”

파킨슨병 아내를 둔 김용구(가명)씨는 지난해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후 아내와 함께 꾸준히 참여해왔다. 김씨는 “몸의 경직을 풀어주는 것은 물론 같은 질병을 가진 사람끼리 만나고 교류하다 보니 점차 아내의 사회적 스킨십 능력이 회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파킨슨병은 치매와 함께 가장 흔한 퇴행성 뇌 질환의 일종으로, 뇌 신경 전달물질인 도파민 분비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다. 뇌의 인지능력엔 문제가 없지만, 운동능력이 느려지고 자세가 불안정하며 손발이 떨리는 증상이 주로 나타난다. 65세 이상 노령층에서는 약 2%가 이 질병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도 10만7천여명(건강보험공단 등록 기준)의 환자가 존재하는데, 최근 10년 새 2.5배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된다.

하지만 신체적 증상보다 더 큰 문제는 환자들이 겪는 우울감 등 정신적 문제다. 병에 걸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사회적 교류를 피하고 고립을 택하기 때문이다. ‘댄스 포 피디’는 이 부분에 주목한다. 병원에서 흔히 하는 운동처방을 넘어 음악과 함께 하는 무용 치료로 우울감을 해소하는 일종의 ‘심리적 처방’에 집중하는 셈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신경과 고성범 교수는 “댄스 포 피디는 균형장애와 보행장애를 완화할 뿐 아니라 환자들의 심리적 손상감을 극복하도록 돕는다. 파킨슨병은 진행을 늦추는 것이 치료의 핵심인데, 음악과 춤을 통한 환자의 능동적 참여를 끌어낸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환자들의 삶을 질을 높이기 위한 적절한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호자 신주미(가명)씨는 “환자 본인뿐 아니라 보호자들도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는데, 여기 와서 다른 보호자들과 교류하며 치료 정보도 얻고 위로도 받으니 좋다”며 “남편은 옆 사람보다 더 잘 하려는 마음에선지 동작도 열심히 따라 한다”고 말했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 민문기 대외협력팀장은 “7~8월은 폭염 때문에 참여자가 조금 적은데, 보통 20여명의 환자가 참여한다. 경기·인천 등 비교적 원거리에서 꾸준히 찾아오시는 분들도 계시다”고 소개했다.

파킨슨 환자 무용치료 프로그램인 ‘댄스 포 피디’에 참여한 환자들과 무용수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 제공
파킨슨 환자 무용치료 프로그램인 ‘댄스 포 피디’에 참여한 환자들과 무용수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 제공
■ 재능기부와 직업 전환을 동시에 도모하는 무용수들 “현대무용가로 활동하던 중 십자인대 두 개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어요. 재활기간 동안 무용치료에 대해 알게 됐고, 지난해 ‘댄스 포 피디’를 만나 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무용 전공자로서 직업 개발의 좋은 기회가 된 셈이죠.”

박소정 강사의 말처럼 환자 못지않게 무용수에게도 ‘댄스 포 피디’는 좋은 기회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애초 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진 것도 부상으로 조기 은퇴를 하는 무용수를 위한 ‘직업 마련’ 차원에서였다. 지난해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27명의 무용수들이 이 시범 클래스를 통해 50시간의 현장교육을 체험하고 있다. 오는 10월부터는 2단계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될 예정이다. 센터는 병원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해 올 3월부터는 강사를 인천 라이온 요양병원, 광주 파킨슨 행복 쉼터, 부산 양산 부산대병원 재활센터 등에 꾸준히 파견하고 있다.

전문 무용수들이 강의에 나서다 보니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단순히 ‘동작’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각종 예술적 경험을 할 기회도 제공한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 임혜경 강사는 “발레를 전공했기 때문에 차이콥스키 음악에 맞춘 ‘백조의 호수’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환자들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고, 우아한 동작을 따라 해보면서 마치 무용수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박소정 강사는 “주로 1960~70년대 음악을 들려주며 건강하고 활기찼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그 시절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상기시켜주면 환자들이 자연스레 프로그램에 빠져드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댄스 포 피디는 무용수들의 사회적 재능기부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사업팀 손혜인 팀장은 “현장으로 나와 재능과 경험을 사회적으로 나누며 환자와 교감할 수 있어 ‘봉사’나 ‘재능기부’를 위해 참여하는 무용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파킨슨 환자 무용치료 프로그램인 ‘댄스 포 피디’에 참여한 환자들과 무용수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 제공
파킨슨 환자 무용치료 프로그램인 ‘댄스 포 피디’에 참여한 환자들과 무용수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 제공
하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라 갈 길도 멀다. 100세 시대, 노령인구 증가라는 현실에도 파킨슨병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강사가 양성되고 이들이 현장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예산 지원이나 건강보험 적용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국내에선 시도된 적 없는 의학적 검증도 필요하다. 고려대 구로병원 고성범 교수가 내년 말을 목표로 논문을 준비 중이다.

양산 부산대병원 민지홍 교수는 “우리 병원은 영남권역 재활병원으로 지정돼 공공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댄스 포 피디를 운영했지만, 다른 병원에서는 비용문제 등 때문에 쉽게 시도하기 힘들 수 있다. 음악·미술치료처럼 정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첨부